20240530_Navigating the Spaces Between_KR
"우리에게 억압된 생각들을 늘어놓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일어난 사건과 그것을 인지하는 주체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로부터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발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특별하다고 여긴 사건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아주 이상하게 들리는 자연의 비밀을 조금만 추상화하면서 실은 그 일이 오래전부터 우리가 사는 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반복되는 일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2층 버스 윗칸에 앉은 덕에 내리쬐는 햇살을 얼굴로 마구 받아치고 있었다. 2층에 앉아 내려다보니 앞으로 뻥 뚫긴 도로는 더 시원해보였고, 퇴근후 삼삼오오 모여 길가에 나와 타코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마치 하나의 무대처럼 보였다. 윗층에 앉으면 진동이 더 커서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늘 이 자리를 선호한다. 단지 한층 차이지만 시점에 작은 변화를 주면서 땅바닥에서 가볍게 떠있는 기분을 선사한다.
정영수 소설의 이 문장을 보니 마치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생명의 신비에 찬탄하다가도, 그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쏟아지는 사람들과 그들이 풍기는 온기에 대한 짜증이 밀려 들어오던 며칠 전이 생각났다. 조금 전 세상에 나온 그 아기 덕에 눈 앞의 한 사람 한사람이 귀하게 보이다가도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계가 제법 징그럽게, 또 고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버스 안에 수많은 사람들과 몸을 맞대고 어딘가에서 어디로 몸을 옮기는 나를 바라본다.
집에 도착하니 그가 말했다.
"저기봐, 보여?"
"뭐가?"
"저기 비둘기가 계속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어."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맞은 편으로 보이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많은 창문들 중 3층, 그 중에 왼쪽에서 두번째 창문에 한 비둘기가 꾸준히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창문은 위로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그 비둘기는 며칠 째 같은 창문에 부딪히고 있었다. 우리가 발코니에 나가서 그 광경을 자주 지켜보게 되자, 반대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본인들 방향을 응시하는 우리를 보고는 발코니로 나와 영문없이 양 옆을 둘러보기도 하고, 또 밖에 나와있던 사람들은 우리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듯 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도 했다.
비둘기는 왜 계속 창문에 머리를 박는 걸까? 그리고 그 비둘기는 왜 저 창문만 골라서 그러는 걸까? 비둘기의 출몰이 잦아지자 이웃들 사이에선 다양한 추측이 오갔다. 어떤 이는 그 창문 안에 비둘기를 유혹하는 무언가, 예를 들면 먹이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다른 이는 비둘기가 창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비둘기로 착각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누군가는 비둘기가 창문 너머에 보이는 무언가에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문 안에 비둘기를 유혹할 수 있는 특별한 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아마도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가정용 전자기기의 특정 소리나, 일반적으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 소리에 비둘기가 반응하는 것일 수 있었다. 어쩌면 어처구니 없게도, 자연에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것 같은 새가 사실 창문 너머의 안락한 세계를 욕망할 수도 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신경과 전문의 빅토르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인터넷에 ´비둘기의 창문 박기´라고 검색하자 ´아파트 창문 열어놓고 한 달 동안 집 비웠더니 비둘기가 테러했습니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런던 동부의 한 아파트가 비둘기에 의해 끔찍한 테러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깜빡 잊고 창문을 비스듬히 열어놓은 채 4주간 집을 비운 A씨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잃었다. 비둘기들은 모든 방에 대변을 흩뿌려 놨다. 건조대, 토스터, 포트기, 조리대, 바닥, 옷장, 침대, 소파, 램프 등 비둘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는 초토화된 집을 청소하는 데에만 무려 15,000파운드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점심을 만들다가 다시금 창문을 바라봤다. 맞은 편 창가에 그 비둘기는 또 다시 창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위로 열린 창문 틈으로 다른 한마리 비둘기가 나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무언가를 공모하듯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그 중 한마리는 비좁게 열린 창 틈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갔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러웠다. 오늘 처음 드나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자 나머지 한마리는 그를 따라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또다시 창문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비둘기들의 행동에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할 일을 제쳐두고 그의 반복적인 행동을 주시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해가 내리쬐고 있었고 눈이 부셔왔다. 나는 결심을 하고 썰던 파를 그대로 도마에 둔 뒤, 그 건물로 건너갔다. 확인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비둘기가 자주 찾는 그 창문의 주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건물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3층에 도달했다. 문 앞에 서자 노크를 하기가 망설여졌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회색빛이 된 방 사진이 떠올랐다. 코가 자연스럽게 찡그러졌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노크를 하고 문이 열리자 온화한 표정의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문이 열리자, 젊은 여성이 문 앞에 섰다. 그녀의 표정은 친절하면서도 어쩐지 나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이 내 눈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창문에 비둘기가 있는 걸 봤어요. 아니, 비둘기가 당신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마도 다른 한마리는… 아니 그보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전혀요."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들이 궁금하신가 봐요?" 이어 그녀는 내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따듯하고 정갈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느껴졌다. 책과 사진이 벽면을 빼곡 채우고 있었고, 그 중에 몇 개의 액자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드로잉도 있었다. 이 집을 찾으려고 건너온 것이긴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집을 예고 없이 들이닥치게 되니 눈을 어디에 둘 지 몰랐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녀는 나를 소파로 안내했고, 세 잔의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사전에 설정된 옵션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20240530_Navigating the Spaces Between_KR
"우리에게 억압된 생각들을 늘어놓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일어난 사건과 그것을 인지하는 주체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로부터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발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특별하다고 여긴 사건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아주 이상하게 들리는 자연의 비밀을 조금만 추상화하면서 실은 그 일이 오래전부터 우리가 사는 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반복되는 일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2층 버스 윗칸에 앉은 덕에 내리쬐는 햇살을 얼굴로 마구 받아치고 있었다. 2층에 앉아 내려다보니 앞으로 뻥 뚫긴 도로는 더 시원해보였고, 퇴근후 삼삼오오 모여 길가에 나와 타코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마치 하나의 무대처럼 보였다. 윗층에 앉으면 진동이 더 커서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늘 이 자리를 선호한다. 단지 한층 차이지만 시점에 작은 변화를 주면서 땅바닥에서 가볍게 떠있는 기분을 선사한다.
정영수 소설의 이 문장을 보니 마치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생명의 신비에 찬탄하다가도, 그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쏟아지는 사람들과 그들이 풍기는 온기에 대한 짜증이 밀려 들어오던 며칠 전이 생각났다. 조금 전 세상에 나온 그 아기 덕에 눈 앞의 한 사람 한사람이 귀하게 보이다가도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찬 이 세계가 제법 징그럽게, 또 고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버스 안에 수많은 사람들과 몸을 맞대고 어딘가에서 어디로 몸을 옮기는 나를 바라본다.
집에 도착하니 그가 말했다.
"저기봐, 보여?"
"뭐가?"
"저기 비둘기가 계속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어."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맞은 편으로 보이는 다세대 아파트의 수많은 창문들 중 3층, 그 중에 왼쪽에서 두번째 창문에 한 비둘기가 꾸준히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창문은 위로 비스듬히 열려있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그 비둘기는 며칠 째 같은 창문에 부딪히고 있었다. 우리가 발코니에 나가서 그 광경을 자주 지켜보게 되자, 반대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본인들 방향을 응시하는 우리를 보고는 발코니로 나와 영문없이 양 옆을 둘러보기도 하고, 또 밖에 나와있던 사람들은 우리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듯 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도 했다.
비둘기는 왜 계속 창문에 머리를 박는 걸까? 그리고 그 비둘기는 왜 저 창문만 골라서 그러는 걸까? 비둘기의 출몰이 잦아지자 이웃들 사이에선 다양한 추측이 오갔다. 어떤 이는 그 창문 안에 비둘기를 유혹하는 무언가, 예를 들면 먹이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고, 다른 이는 비둘기가 창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비둘기로 착각해 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누군가는 비둘기가 창문 너머에 보이는 무언가에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문 안에 비둘기를 유혹할 수 있는 특별한 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아마도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가정용 전자기기의 특정 소리나, 일반적으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 소리에 비둘기가 반응하는 것일 수 있었다. 어쩌면 어처구니 없게도, 자연에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것 같은 새가 사실 창문 너머의 안락한 세계를 욕망할 수도 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신경과 전문의 빅토르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인터넷에 ´비둘기의 창문 박기´라고 검색하자 ´아파트 창문 열어놓고 한 달 동안 집 비웠더니 비둘기가 테러했습니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런던 동부의 한 아파트가 비둘기에 의해 끔찍한 테러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깜빡 잊고 창문을 비스듬히 열어놓은 채 4주간 집을 비운 A씨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넋을 잃었다. 비둘기들은 모든 방에 대변을 흩뿌려 놨다. 건조대, 토스터, 포트기, 조리대, 바닥, 옷장, 침대, 소파, 램프 등 비둘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는 초토화된 집을 청소하는 데에만 무려 15,000파운드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점심을 만들다가 다시금 창문을 바라봤다. 맞은 편 창가에 그 비둘기는 또 다시 창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위로 열린 창문 틈으로 다른 한마리 비둘기가 나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무언가를 공모하듯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그 중 한마리는 비좁게 열린 창 틈 안으로 매끄럽게 들어갔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러웠다. 오늘 처음 드나드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자 나머지 한마리는 그를 따라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또다시 창문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비둘기들의 행동에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할 일을 제쳐두고 그의 반복적인 행동을 주시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해가 내리쬐고 있었고 눈이 부셔왔다. 나는 결심을 하고 썰던 파를 그대로 도마에 둔 뒤, 그 건물로 건너갔다. 확인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비둘기가 자주 찾는 그 창문의 주인을 만나보기로 했다. 건물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3층에 도달했다. 문 앞에 서자 노크를 하기가 망설여졌다. 어제 인터넷에서 본 회색빛이 된 방 사진이 떠올랐다. 코가 자연스럽게 찡그러졌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노크를 하고 문이 열리자 온화한 표정의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문이 열리자, 젊은 여성이 문 앞에 섰다. 그녀의 표정은 친절하면서도 어쩐지 나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의 눈빛이 내 눈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창문에 비둘기가 있는 걸 봤어요. 아니, 비둘기가 당신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마도 다른 한마리는… 아니 그보다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전혀요."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들이 궁금하신가 봐요?" 이어 그녀는 내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따듯하고 정갈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느껴졌다. 책과 사진이 벽면을 빼곡 채우고 있었고, 그 중에 몇 개의 액자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드로잉도 있었다. 이 집을 찾으려고 건너온 것이긴 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집을 예고 없이 들이닥치게 되니 눈을 어디에 둘 지 몰랐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녀는 나를 소파로 안내했고, 세 잔의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멈출 수 있는 능력에 있으며, 그 멈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사전에 설정된 옵션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